유래
이천의 유래
문헌에서 찾아보면, 고려 이전에는 남천(南川), 남매(南買), 황무(黃武) 등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복하천(福河川)에 이르렀을 때 홍수(洪水)로 인하여 내를 건널 수 없는 상황에서 서목(徐穆)이라는 사람이 인도하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후에 왕건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가상히 여겨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에서 첫글자 '利'와 끝글자 '川'을 따와 '利川'이라는 명칭을 하사한 이래 오늘날까지 불리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 누정편)
또한 일설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남정(南征)길에 올라 이천에 주둔하고 점을 쳐보았더니, '利涉大川' 점사(占辭)를 얻어 역시 '利川'이라는 명칭을 내렸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고적편)
어의적(語義的)으로는 『큰 내(大川)를 건너 이로웠다』는 뜻이다. 주역(周易)에 의하면 '利涉大川'이라는 글귀가 18번이나 나오는데 대체적으로 『학문과 덕을 쌓고 몸을 기르면 험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는 大川을 건너 큰 공(功)을 세울 수 있었으며 온 天下가 이롭게 된다』라는 의미를 말한다.